생활 에센스
[스크랩] 내가 곧 기업 슈퍼맨이 뜬다 - 1인기업시대
차칸남자64
2006. 8. 12. 22:47
내가 곧 기업 슈퍼맨이 뜬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일반화되고 안전한 직장은 사라졌다. 40대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가 아니라 쫓겨나야 하는 ‘사오정’이 됐다. 청년실업률은 10%에 육박할 만큼 올라갔고 비정규직 역시 빠르게 확대됐다. 현재 신규 일자리의 50% 이상, 여성인력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말하자면 개인 스스로가 경쟁력 있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직장인들은 오로지 믿을 것은 자신뿐이라며 10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온갖 자기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1인 기업’이란 단어는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니 한번 도전해 볼 과제라는 생각이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1인 기업이 단순히 혼자 일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은 “1인 기업은 조직의 소속 여부에 상관없다”며 “조직 속에서나 밖에서 자신의 로드맵에 따라 스스로의 삶을 경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정규직이어도 직원이 아니라 회사에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이라는 마인드로 일하면 1인 기업가라는 얘기다. 회사가 주체가 아니라 개인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1인 기업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만 확보한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전문성은 단순히 변호사나 의사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은 “세일즈, 마케팅, 요리사, 출판기획자 등 모든 영역에서 프로페셔널리즘이 확산될 것”이라며 “꾸준한 노력과 공부로 끊임없이 갈고 닦겠다는 자세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1인 기업가들은 어떤 사람일까? 특히 컨설팅영역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1인 기업가들은 어떤 모습일까?
1인 기업가로 명성을 날리는 이들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 생활방식, 1인 기업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던지는 조언 등을 들어봤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수억대 연봉 안 부럽다
2007년까지 100권 쓰고, 100살까지 일할 것
왕성한 지적 호기심, 일에 대한 열정 필수
직장 경험은 1인 기업으로 가기 위한 필수 관문
“3년 전에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은근히 나를 불쌍하게 생각했어요. 조직을 떠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1인 기업이 미래의 주요 트렌드라고 확신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엔 변함없어요. 5년, 10년 정도 후에 나 같은 모델은 다양한 영역에서 더욱 많아질 겁니다.”
공병호(45)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의 말을 듣고 있으면,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열정이 남달라서다. 올해에만 10권의 집필계획이 있다거나 100살 때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겠다는 말을 듣고 있으면 그의 부지런함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52권의 책을 썼는데, 올해 10권, 2007년까지 100권의 책을 쓸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세가 들어오는 책만도 80권 이상 될 겁니다. 더 멀게 바라보면, 100살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습니다. 피터 드러커가 95세인데 아직 일하고 있잖아요.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물론 그 사이 많은 변신이 있을 겁니다. 연구의 테마와 장르가 바뀌겠죠.”
1인 기업 활동을 하면서 그의 수입은 조직에 속해 있을 때보다 다섯 배 이상 많아졌다. 연봉기준으로 수억 원에 이른다. 1인 기업가 중 최고 수준이다. 주로 인세와 강연 수입이다. ‘1인 기업’ 하면 공병호가 떠오를 만큼 인지도 부분에서도 단연 최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한 분야의 전문가도 모자라 전 분야에 걸친 전문가로서 ‘르네상스인’을 꿈꾼다. 새로운 영역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종합하는 작업이 너무 즐겁다.
1인 기업에 대해 그가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매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일하면서 정말로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당당하고 다이나믹하게 살 수 있어서 좋아요. 최상의 퍼포먼스를 위해 정체되지 않고 늘 자신을 갈고 닦는 게 즐겁습니다. 이런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강하게 만들죠. 이건 그 자체가 항상 미래를 위한 준비와 바로 연결돼 있습니다. 오래 오래 현역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년을 위한 멋진 준비라고 할 수 있지요.”
공 소장은 매일 밤 10시에 잠이 들어 다음 날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새벽부터 12시 이전까지 강연이 없으면 글을 쓰면서 보낸다. 오후에는 주로 책을 읽는데 한 달에 평균 30∼40권씩 독파한다. 책 구입비만 매달 50만∼70만원 정도나 된다.
그는 1인 기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5년에서 10년 정도의 조직 생활을 반드시 거치라고 조언했다. 조직에서도 상위 1% 안에 들 정도로 자신을 단련하라고 강조했다.
“기업 내부에서도 정말 저 사람은 어디 내놓아도 먹고살 만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죠. 조직생활에서 배운 기술, 지식, 휴먼 네트워크, 브랜드 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밖에서도 아주 가난하고 피곤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의 평가는 대단히 냉정하거든요. 확실히 고객에게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고객들은 절대로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일단 조직 생활에서 기업가 마인드를 갖고 치열하게 살면서 기회를 찾아내기 바랍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
당신도 1인 기업 CEO 될 수 있다
‘변화 경영’ 개념 만들어 국내 처음 소개
40대는 가장 열정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나이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어 자기 관리 더욱 철저해야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인간시대>에 등장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에요. 대단한 고생을 한 것도 아니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저 대학을 졸업해서 20년간 한 직장에 다녔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1인 기업인으로 성공했지만 전 그다지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감을 얻었으면 합니다.”
구본형(51)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은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한국 IBM에서 근무했다. 영업 관리 업무를 4년 동안 했고 16년 동안 변화경영 분야에서 조직의 개선과 혁신을 담당했다.
“일을 하면서 직업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던 변화를 남보다 빨리 냄새 맡을 수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55%만이 직장인이고, 나머지 45%는 개인사업자나 실업자입니다. 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이제는 취업만이 노동의 유일한 조건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그맘 때쯤 그가 쓴 책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었다. 1997년, 그의 나이 마흔셋일 때다.
“그때까지 변화경영 분야에서 일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해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당시까지 별로 글을 써본 적이 없었지만 언젠가 책을 한권 내는 것은 오래된 욕망이었어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신문, 방송 등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구본형이란 이름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고, 강의를 요청하는 곳도 생기고 방송 출연도 시작했다. ‘변화경영 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자신을 브랜드화 하는 작업도 해 나갔다.
그리고 2000년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고 ‘변화경영연구소’라는 개인연구소를 만들었다.
1인 기업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것.
“마흔이 넘으면서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미 직장일이 지루해졌고 회사에서 내 미래는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으로 가장 성숙한 40대 중반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마흔 세살 이후 그는 매일 밤 10시에 취침해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글을 쓰면서 보낸다. 1년이면 대략 700시간 정도 집필시간이 되는 셈이다.
그의 일주일은 얼핏 보기엔 상당히 여유롭다. 강연, 방송 등 이틀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가족과 보내거나 개인 시간으로 쓴다. 하지만 늘 현실에 대한 긴장과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그게 그의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서 즐겨 읽던 무협지도 읽지 못하게 됐다고 말한다. 시간 낭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창조적이어야 하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합니다. 나 이외에 다른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 소장은 자신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1인 기업 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조직에서 치열하게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조직에서 다양하게 경험하고 자신을 테스트해 볼 기회를 가지라는 말이다.
이내화 성공전략연구소장
충실한 직장경험이 밑천
독립 위해 꾸준히 퍼스널 브랜드 활동 벌여
‘성공학 컨설턴트’라는 개념 만들어 인지도 높여
외부 수입과 직장 수입 같아졌을 때 회사 나와
회사에서 6년 정도 준비했습니다. 1인 기업에 초점을 둔 건 아니었고, 퍼스널 브랜딩(자기 이름을 브랜드화하기) 작업을 했죠.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과장 때부터 사내 강사로 활동하고 외부 잡지 등 여기저기에 적극적으로 기고했죠. 제가 쓰는 글의 성격을 적당히 규정할 수 없어서‘성공학 칼럼니스트’라는 말을 지었는데 그게 적중했습니다. IMF 이후 ‘성공학’에 대해 강의해 달라는 외부 요청이 늘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겁니다.”
이내화(48) 성공전략연구소장은 연간 350여 회 강의를 나가며, 방송, 기고 등으로 연간 2억5,000만원을 벌어들이는 스타 강사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쌍용에서 홍보와 사보제작을 18년간 하다가 2000년 독립했다.
“여기저기 글을 쓰고 강의를 나가면서 외부에서 버는 수입이 늘어나더군요. 회사에서 버는 돈과 외부 수입이 같아지는 시점을 독립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3개월 정도 회사 월급보다 외부 수입이 많더군요. 그때 용기를 내서 독립한 겁니다.”
이 소장은 우연치 않게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사내 특강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내부에서 무언가 꿈틀하는 느낌이었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생겼다. 그리고 사비를 들여가며 자기계발, 동기부여 관련 강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그를 만든 출발이었다.
그는 직장생활에서도 “자영업자처럼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개인 브랜드를 만들라는 것. 자신이 정통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계발하고, 사람들에게 알려 나가라는 말이다. 명함도 ‘김아무개 인사과장’에서 ‘김아무개 인사닷컴’이라고 바꾸고, 자신의 분야에서는 대학에서라도 두 시간은 거뜬히 강의할 정도로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 보세요. 먼저 자기 이름으로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정기적으로 쓰세요. 예를 들어 ‘아무개의 직장인 뒤집어 보기’라는 타이틀로 말이죠. 그리고 자기전문분야를 가지고 인터넷 카페 운영자가 되세요. 한 번 유명한 시삽이 돼보세요. 세 번째 단계로 자기 홈페이지를 만드는 겁니다. 외부 용역을 주면 50만원이면 돼요. 물론 정기적으로 충실히 글을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와 카페 등에 올려 놓은 글들을 모아 책을 내는 거죠. 시장에서 시험을 받는 겁니다. 그게 팔리면 저처럼 되는 겁니다.”이 소장은 평균적으로 한 주에 두 권, 1년에 100권 정도 책을 읽는다. 주로 최신 트렌드와 성공학 관련 책을 본다. 나폴레옹 힐의 성공학 시리즈는 그가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바이블이다. 10종류의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지만 진짜 좋은 정보는 역시 사람들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성공학 강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좋은 일하고 돈을 버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죠. 직장에 계시거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은 인생의 로드맵을 만드세요. 자신의 재능에 맞는 영역에서 벤치마킹 모델을 선정해 그 사람 사진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 다짐하세요. 그리고 열정을 다해 실천하세요. 어느새 목표가 이만큼 다가와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장소영 장이미지연구소 소장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성공 조건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 공동 창업, IMF로 쓴 맛봐
와신상담 끝에 2003년 10월 재 창업, 수익성·대중성 모두 성공
의류렌털 사업에도 뛰어들 예정, 토털이미지컨설팅업체 육성이 꿈
이미지 컨설팅업체인 장이미지연구소 장소영(43) 소장은 경희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이후 80~90년대 중반까지 예인, 방송, 광고 등을 통해 패션, 헤어, 메이크업 분야에서는 소위 잘 나가는 스타일리스트였다. 그러다 이미지컨설팅이라는 자신의 길을 찾게 되고 특정계층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이미지컨설팅이 필요하다고 판단, 96년경 동료와 함께 사무실을 열고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장 소장은 이미지가 각광받는 시대, 일반인에게 개인 코디시대가 다가온다는 화두를 던졌으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 생활로 돌아갔다.
와신상담 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재기에 나선 것이 지난 2001년. 이 때는 사무실도 별도로 열지 않고 조용하게 장이미지연구소라는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만들었다.
2002년 e-비즈니스 분야에서 배운 능력을 시험해 볼 겸 홈페이지(www.jang-image.com)를 혼자 만들기도 했다. 그 사이 각종 방송, 드라마, 연극, CF 등에서 전속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시간 나는 대로 백화점이나 기업체를 돌며 강연활동을 했고 기고나 방송출연 등의 바쁜 활동을 보냈다.
서서히 자신감이 붙고 이미지컨설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2003년 10월 현재의 역삼동 사무실을 마련하고 공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현재 장이미지연구소의 활동은 고객을 상대로 한 이미지컨설팅 과정과 이미지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전문가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 개설 이후 지금까지 대기업 임원에서 평범한 주부, 취업을 앞둔 학생 등 100여 명이 그의 손을 거쳤다. 현재에도 십수 명의 개인고객과 5명 정도의 전문가과정 수강생이 있다.
장 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조만간 대학을 돌며 대학생을 그룹별로 모아 이미지컨설팅을 해 주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 경우 가격은 60% 이상 다운시킬 수 있다.
특히 ‘비비드(Vivid)21’이라는 의상 렌털 프랜차이즈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특정한 상황이나 연출이 필요한 개인에게 필요한 의상이나 이미지를 조언해 주고 대여해 주는 사업이다. 조만간 부산, 대구에 첫 대리점이 오픈될 예정이며 전국으로 늘릴 계획이다.
장 소장은 1인 연구소 운영이 가능한 것은 바로 전문성과 인적네트워크라고 강조한다.“혼자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간의 노하우와 경력으로 쉽고 정확히 갈 수 있는 길을 빨리 찾을 수 있죠. 또 필요할 때마다 아웃소싱을 할 경우에도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효율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죠.”
장 소장의 꿈은 1인 기업의 대형화이다. “연구소는 물론 헤어숍, 의류점, 피부관리실, 사진스튜디오 등 이미지컨설팅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한 건물에 모두 모아 토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숙영 이숙영자기계발클리닉 원장
“날 원하는 곳이면 지역 시간 가리지 않아”
전업주부에서 삶의 행복 찾아 3년 동안 독서에만 집중
2002년 인터넷에 자기계발클리닉 설립, 2년 만에 팬클럽도 생겨
카리스마 넘치는 자칭 푼수아줌마, 고객을 대하는 맘이 성공 키워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얼마 전 인기를 모은 노래 가사지만 이숙영(40) 이숙영자기계발클리닉 원장의 생활반경이다. 전국 어디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개인이든 학교이든 백화점 문화센터든 달려가는 열혈 아줌마이다.
자기계발클리닉은 자신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한 프로그램. 시간·정보·가족·건강·친구 등 인생을 살아가는 데 관리가 필요한 사항들을 개인에 맞게 분석, 설계하고 조언해 준다.
이 원장은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교과서 편집일을 하다 미국에서 8년 동안 거주하던 평범한 주부였다. “밥 굶는 것도 아닌데 아이와 남편만을 위한 삶이 행복하지 않았어요. 갈증의 원인을 분석하다 보니 결국 내 자신의 문제였죠.”자신에게 물리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그녀는 이후 내리 3년 동안 경영, 경제, 심리, 철학 등 관심있는 분야의 책만을 골라 수백 권을 독파한다. MBTI(성격유형검사), STRONG(진로탐색·직업흥미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숙영자기계발클리닉(www.newlife4u.co.kr)을 설립하고 원장이 된다. 사무실은 없다. 이 원장은 “웹 상의 홈페이지와 컴퓨터가 있는 내 집이 사무실이죠. 틈틈이 낸 두 권의 책 《스스로를 결정하라, 나는 나를 스카웃한다》도 집에서 쓴 것이죠.”이 원장은 현재 부산, 창원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동아대 사회교육원, 대구산업정보대학 등에 출강하고 있으며 외부기고, 특강활동 등도 병행하고 있다. 주요 수익은 강의와 책 인세를 통해서 들어오는데 꽤 짭짤하다고.
수입뿐 아니라 이 원장은 이미 온·오프라인 상에서 얼짱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사이트, 책,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이자클사모(이숙영자기계발클리닉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팬클럽을 결성했다.
설립 2년도 안돼 스타로 떠오른 데는 그녀의 카리스마와 스스로를 푼수아줌마라고 말할 정도의 솔직함과 적극성이 바탕이 됐다.
실제 그녀는 매일 사이트에 올라온 토론, 질문, 의뢰 등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의 글을 적는다.
이 원장은 전공자도 어려운 일에서 혼자의 힘만으로 성공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것이 바로 성공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학문의 틀에서 벗어나 훨씬 자유롭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항상 강조하는 최고의 자기계발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자기다운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사람”이다.
이 원장은 주부나 학생, 회사원이 1인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기를 권한다. 자기만의 성공방식이 있는지, 정말 일을 사랑하는지, 스스로가 하나의 독립사업체임을 깨닫고 그럴 준비가 됐는지.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남겨 놓아야 한다면 그건 바로 고객입니다. 그 고객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과 따뜻하고 포용하는 사랑을 갖고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성공의 기초는 닦아 놓은 셈입니다. ”
이기찬 이기찬국제비즈니스전략연구소 대표
“마라토너 같은 끈기와 집념 있어야”
마라톤 입문 1년 만에 풀코스 도전, 죽을 각오로 완주에 성공
타향살이 싫어 대기업 뛰쳐나와 오퍼상 차려 산전수전 겪어
혼자 오퍼상·무역컨설팅 병행, 4시 30분 기상하는 새벽형인간
2002년 열린 동아마라톤대회 선두와 중위권 주자들이 이미 자리를 뜨고 난 자리. 결승점에 40대 후반의 한 주자가 거친 숨을 내쉬며 골인한 후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공식기록은 5시간 40분. 별로 내세울 것 없는 기록처럼 보이지만 마라톤 입문 1년 만에 이루어낸 풀 코스 완주이다.
주인공은 무역업체인 유선무역 대표이자 무역컨설팅사이트 이기찬국제비즈니스전략연구소(www.youson.com)를 운영하는 이기찬(51) 대표. 골프 외에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던 이 대표는 2001년 3월 마라톤에 입문하여 그 해 5㎞, 하프마라톤을 완주했으며 이듬 해 풀코스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한 번 한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탓에 죽더라도 완주하려고 했어요. 중간에 포기했다면 다음 번 도전에서도 포기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죠.”
이 대표의 인생은 마라톤처럼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외대 서반아어과를 나와 율산실업, 현대건설 등 잘 나가던 회사에서 요직(해외지사 근무)에 있었지만 타향살이가 싫고 사업을 해 봐야겠다면서 회사와 주위의 만류가 많자 사표수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귀국해 버렸다.
87년 유선무역을 차리며 오퍼상의 세계에 뛰어든 지 17년이 지난 현재 그는 혼자서 유선무역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이버 무역컨설팅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사업이 안정되자 주위에서 오퍼상 창업과 관련한 각종 문의와 강연요청이 늘어났어요. 그래서 아예 책을 내기로 했죠. 그런데 출간 이후 독자들의 문의가 더 늘어나 2003년 5월 사이버컨설팅업체를 오픈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가 2002년 출간한 《오퍼상이나 해 볼까》는 지금까지 2만권 이상 팔린 무역업 관련 서적 중에서는 스테디셀러. 이후 2권의 책을 더 냈으며 조만간 자신의 일과 삶의 모든 역정을 담은 《세계를 향한 끝없는 도전》을 낼 예정이다.
이 때문에 오퍼상이자 컨설턴트인 이 대표의 하루는 빠듯하면서도 느긋하다. 시간을 분, 초로 나누는 그의 철저한 시간관리 때문이다.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운동과 저술, 기고를 한 후 출근하여 무역 업무를 보고 금요일에는 대구로 내려가 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외국어학부에서 비즈니스영어를 강의한다.
이 대표는 요즘의 무역 교육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무역실무와 무역학과를 분리해야 합니다. 무역학과와 무역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면 실무는 철저히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 경험을 쌓도록 해야죠.”
인터넷시대, 아직도 오퍼상은 유효한가에 대해 그는 “예스”라고 말한다.
“단순한 중개역할을 해 주는 것에서 벗어나 가격네고에서 시장정보 제공, 로비스트의 개념까지 거래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죠. 이런 바탕에서 전문성과 지식이 쌓이면 혼자서 오퍼상이든 컨설팅이든 병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코노믹 발췌 >
출처 : 카프리전의 부라보UR라이프
글쓴이 : 카프리_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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